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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교수님 방문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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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583회 작성일 06-02-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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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랑과 감동이 넘치는 대한웰니스병원입니다.
오늘 오후 84년 LA올림픽 유도스타 금메달리스트
하형주동아대 교수님이 본원을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잠깐 하형주 교수님은?
하 형 주 (河 亨 柱)
'불굴의 투지로써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유도인' 1984년 LA올림픽경기대회 개막식에서, 한국 대표선수단의 기수로 입장한 하형주는 선수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본 선수에 한판승, 당당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하형주는 1962년 6월 3일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하종언과 권현순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이웃으로부터 장사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형주는 자라면서 뀨난히 발이 커서 '왕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진주 천전초등학교때 교내 제일의 씨름꾼이기도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중학교 졸업 후 한 때 진주상고에 진학, 씨름과 레슬링 선수를 한바 있으나 어머니의 고종사촌동생인 동아대 교수 정삼현에 의해 부산체고로 옮겨 유도선수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형주는 동아대학교로 진학하였고, 2학년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한국 유도 중량급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대학 2학년 때인 81년 7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95kg이하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후에 무제한급에도 출전,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해 9월에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와, 82년 세계대학생선수권대회에 서 각각 동메달을 따냄으로써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83년 5월 홍콩에서 개최된 범태평양 유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84년 1월 프랑스 오픈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LA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유도계에 떠오르는 별로 이미 정평을 받았다.

그러나 LA출정을 40여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6월, 연습도중 허리를 다쳐 입원해야 하는 불운이 닥쳤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지 열흘만에 정신력으로 병원을 박차고 일어나 '이 한목숨 다바쳐 유도 앞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결과에 관계없이 만족한다'며 불굴의 투지를 보인 끝에 드디어 그는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1988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참가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으며 동아대학교의 체육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96년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부산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훈으로는 백상 신인최우수선수상(1981), 체육훈장 백마장(1983), 체육훈장 청룡장(1984), 아시아기자연맹 최우수선수상(1984), 대한민국체육상(198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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